학문 중에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학문은 수학이며, 그 이유는 사람의 약속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OLPP는 수학적 base에서의 철학을 말하고 나의 첫번째 책에서 주장했던 내용이다.


이는 경험주의, 실존주의에서 출발했으며 내 생각은 본질 자체의 정의가 섣부른 판단이라 굳이 사르뜨르가

사상을 나누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사상이 신을 반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담배를 폈고 폐부종으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기준으로 매우 오래 산 것으로 보아 신을 믿는 사람들보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았을 것이다라고 추측해 본다.


나는 불어를 모른다. 제대로 공부하려면 불어를 알아야 할 것 같은데 우선은 인터넷에 퍼져있는 것으로 공부하게 되었으며.


내 생각은 많았고, 지금도 많지만 이 카테고리의 글은 그의 말 몇가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끄적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생은 B(irth)와 D(eath) 사이의 C(hoice)이다."


죽음도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그의 주체적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OLPP는 사실 각 펑션, 컴포넌트, 아키텍쳐 단위의 코드 뭉치이기 때문에 당장은 주체성이 없고, 다른 모듈과의 관계에 의해 본질이 결정되는 원리이다. AI라고 부르는 것들은 아직 수백년은 더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OLPP에 주체성은 없다고 봐야겠다.  물론, 총 쥐어주면 사람 죽이는 AI야 금방 만드는데 고요한 호수에서 날아가는 새를 보며 감성을 느끼고 스스로 작품을 만들고 그 수익을 불우한 이웃에게

도와주고 그 안에서도 고민하는 AI는 수백년~수천년이 걸릴 것이라 생각한다. OLPP는 본질보다 실존보다 다른 모듈간의 관계가 중요하고 주체성은 없다.


"존재가 선행하며 본질을 지배한다."

그게 존재의 본질이라면? 말 장난 같기도 하지만 사르트르 시대에서는 생각의 다변화를 위해 필요한 사상이었다.


"파시즘은 그 피해자의 숫자가 아니라 그 살인의 방법에 의해 정의된다."

결론도 사실 중요하다. 해고의 방법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해고는 파시즘의 국수주의와 같이 지 혼자 잘 살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OLPP 역시 결과가 중요하다.

y = f(x) 이기 때문에 function 설계도 중요하지만 y나 f 중 틀릴 경우 고쳐야 할 것은 f() 다.

"과거란 가진 자의 사치이다."

워낙에 많은 역사가 왜곡되니까... 돈 벌고 사람 다 해고시킨 부자들이 자서전을 쓰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 같다. 스티브잡스가 워즈니악에게 구라치고 돈 떼어먹은 사건만 아니면 정말 성인으로 기억되었을텐데 말이다. 

"부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결국 죽는 이들은 가난한 자들이다."

사실, 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희생시켜 자존심을 지키거나 뭔가를 얻으려는 포괄적인 것을 의미한다. OLPP가 수학적 base를 벗어나지 않지만 가끔 현 사회에 대한 설명에 이용될 때가 있는데 그것은 매우 실용적이고 쉽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절망과 함께 진정한 낙관주의가 시작된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가 아무런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며, 그에게 주어질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자기 자신을 믿으며 홀로 모든 것의 안녕을 위해 행동하는 것. 그것이 낙관주의이다."

극명한 것들은 사실 모두 이어져 있다. 선과 악이 한몸이듯.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도 한몸이라는 것. 다만 무엇이 무엇을 먼저 격발 시키느냐. 그 시간이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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